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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마인드가 EVE 온라인으로 간 이유: 15년 게임 연구가 '끝나지 않는 세계'로 옮겨간다

2026-08-22 · 7분 읽기

구글 딥마인드가 2026년 8월 21일 발표한 글에서 EVE 유니버스를 다음 AI 연구 무대로 지목했다. Alexandre Moufarek과 Adrian Bolton이 쓴 'From Atari to EVE Online'은 2010년 창립 이후 아타리에서 바둑과 스타크래프트를 거쳐 온 15년의 게임 연구를 정리하고, 2003년 출시돼 20년 넘게 이어져 온 단일 우주를 지속 학습과 장기 계획의 시험장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점수가 있는 게임을 정복하던 단계에서 점수도 규칙서도 없는 세계를 이해하는 단계로 목표가 옮겨간 것이 이 발표의 핵심이다. ASAP은 공식 블로그를 1차 출처로 정리한다.

아타리 49종에서 노벨상까지, 게임이 만든 계보

딥마인드의 게임 연구는 2010년 창립 직후 아타리 2600에서 시작했다. 심층 신경망이 원시 픽셀만 보고 게임을 배우는 DQN(Deep Q-Network)은 퐁과 브레이크아웃과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포함해 49종을 게임별 전용 설계 없이 익혔고, 2015년 네이처 논문으로 심층 강화학습 시대를 열었다.

이후 계보는 잘 알려져 있다. 알파고가 2016년 세계 챔피언 이세돌을 꺾었고, 알파고 제로는 사람 데이터 없이 자가 대국만으로 이전 버전들을 넘어섰다. 알파제로는 같은 알고리즘 하나로 체스와 쇼기와 바둑을 익혔고, 뮤제로는 규칙조차 모른 채 플레이하는 법을 배웠다. 2019년 알파스타는 실시간성과 불완전 정보를 다루며 스타크래프트 II에서 그랜드마스터에 올랐다.

딥마인드가 강조하는 것은 승리 기록이 아니라 파급이다. 알파고의 37수는 프로 해설자들이 처음에 실수로 여겼을 만큼 예상 밖이었고, 수백 년 누적된 정석을 뒤집으며 새 전략 탐색을 촉발했다. 알파제로도 체스에서 새로운 수순을 열었다. 그리고 게임에서 다듬은 탐색의 접근법이 알파폴드로 이어져 50년 난제였던 단백질 구조 예측을 풀었고, 2024년 노벨 화학상으로 이어졌다. 게임이 목적이 아니라 지능을 이해하는 제약된 실험실이었다는 서사가 여기서 완성된다.

점수를 최적화하는 에이전트에서 화면을 보는 에이전트로

딥마인드가 던진 다음 질문은 방향이 다르다. 명확한 목표와 충분한 학습만 주어지면 AI가 어떤 게임이든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보였지만, 현실 세계에는 점수판도 규칙서도 없다. 그래서 질문이 "어떤 게임이든 정복할 수 있는가"에서 "사람이 하듯 게임 세계를 이해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로 바뀌었다.

이 질문에 답하려는 것이 SIMA(Scalable Instructable Multiworld Agent)다. SIMA는 고득점을 최적화하는 대신 플레이어가 보는 화면을 그대로 '보고', 자연어 지시를 이해하며, 평범한 키보드와 마우스 조작으로 행동한다. API도, 소스 코드 접근도 필요 없다. 딥마인드의 프런티어 모델인 제미나이로 구동되는 SIMA 2는 실시간 추론과 대화가 가능한 상호작용형 동반자로 소개되며, 노 맨즈 스카이와 발하임과 하이드로니어를 포함한 복잡한 3D 게임에서 사람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인다고 딥마인드는 설명한다.

게임 개발사 관점의 함의도 함께 제시된다. 게임 코드를 고치지 않고도 붙는 범용 게임 에이전트는 세계를 실제로 이해하는 AI 동료나 스크립트로는 불가능한 반응을 하는 NPC를 가능하게 하고, 커밋마다 게임이 바뀌는 개발 단계에서는 견고한 QA 테스트를, 출시 후에는 새 콘텐츠와 예측 불가능한 플레이어 행동에 재스크립팅 없이 적응하는 수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EVE라는 실험실: 20년 넘게 굴러온 단일 우주

새 파트너는 EVE 유니버스를 만든 독립 스튜디오 Fenris Creations이며, 파트너십 자체는 2026년 상반기에 공개됐다. 2003년 출시된 EVE 온라인은 수천 명의 플레이어가 하나의 우주를 공유하는 대규모 다중접속 우주 시뮬레이션으로, 20년 넘게 끊기지 않고 진화해 왔다. 경제는 실제 수요와 공급으로 움직이고 교역망은 수천 개 항성계에 걸쳐 있으며, 동맹과 분쟁과 외교로 짜인 지형은 사람의 상호작용이 만든다.

딥마인드가 EVE에서 시험하겠다고 밝힌 능력은 네 가지다. 계속 바뀌는 세계에서 이전 것을 잊지 않고 새 기술을 익히는 지속 학습, 오늘날 모델의 컨텍스트 창을 훨씬 넘는 시간 규모에서 지식을 쌓고 꺼내 쓰는 기억, 몇 주와 몇 달과 몇 년 단위로 추론하는 장기 계획, 그리고 협력과 경쟁과 협상과 경제와 창발적 사회 행동을 대규모로 다루는 다중 에이전트 역학이다.

파트너십의 범위는 EVE 온라인 하나가 아니다. EVE 온라인이 대규모 단일 샤드 지속 우주를 제공한다면, EVE Vanguard는 1인칭 시점에서 지상 전술 판단을 다루고, EVE Frontier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스마트 어셈블리'와 개방형 구조로 세계의 규칙 자체가 바뀔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순간 반응 수준의 전술부터 은하 규모 전략까지 여러 추상 층위를 오가는 에이전트를 연구하겠다는 설계다.

3단계 로드맵과 이미 나간 결과물

실제 배치 계획은 조심스럽게 단계를 나눴다. 장기 연구 프로그램은 라이브 플레이어와 분리된 안전한 샌드박스인 EVE 온라인 오프라인 인스턴스에서 시작하고, 그다음 EVE Frontier에서 사람과 에이전트가 지속적이고 개방적인 세계에서 공존하는 방식을 연구한다. 능력이 충분히 성숙한 뒤에야 EVE 온라인과 EVE Vanguard 본편에 들여오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명시했다.

이미 나온 결과물도 하나 있다. 제미나이를 쓰는 Aura Guidance는 실제 초보자 도움말(Rookie Help) 질문과 답변에서 나온 플레이어 생성 지식을 신규 파일럿에게 전달한다. 협업이 연구 선언에 그치지 않고 라이브 서비스에 붙었다는 근거이자, 동시에 현재까지 공개된 유일한 실사용 사례다.

벤치마크가 아니라 '끝나지 않는 환경'을 고른 것의 의미

이 발표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대상 게임이 아니라 환경의 성질이다. 바둑과 스타크래프트는 한 판이 끝나면 상태가 초기화되고, 그래서 학습 신호가 깔끔하고 점수 비교가 쉽다. EVE는 정반대다. 판이 끝나지 않고, 어제의 결과가 오늘의 초기 조건이 되며, 평가 대상이 계속 움직인다. 이 전환은 벤치마크 문화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읽을 수 있다. 고정된 테스트 세트에서 점수를 올리는 방식이 한계에 닿았다는 인식이 여러 진영에서 동시에 나오는 중이고, 지속형 세계는 정답표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점수 최적화가 원천적으로 어렵다.

네 가지 능력 목록도 같은 각도에서 읽힌다. 지속 학습과 기억과 장기 계획과 다중 에이전트 역학은 모두 현재 LLM 기반 에이전트가 가장 약한 지점이고, 공통점은 하나의 세션을 넘어가는 시간이다. 컨텍스트 창을 늘리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컨텍스트 창이 아무 의미가 없는 환경에 던져 넣은 셈이다. 이 선택이 성공하는지 여부는 흥미로운 게임 데모가 아니라, 몇 주 뒤에도 어제 배운 것을 쓸 수 있는 에이전트가 나오는지로 판정될 것이다.

SIMA의 조작 방식이 사무용 에이전트와 같은 문제를 푼다

SIMA의 설계에서 개발자가 가장 먼저 봐야 할 대목은 조작 방식이다. API도 소스 접근도 없이 화면 픽셀을 보고 키보드와 마우스로만 행동한다는 제약은, 요즘 급속히 늘고 있는 컴퓨터 사용 에이전트와 정확히 같은 구조다. 게임 코드를 못 고치는 것과 사내 레거시 소프트웨어에 API가 없는 것은 기술적으로 같은 문제다.

그래서 게임 환경은 이 계열의 훈련장으로 자연스럽다. 화면이 빠르게 바뀌고, 실패가 안전하며, 시나리오를 무한히 생성할 수 있고, 무엇보다 성공 여부를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기 쉽다. 딥마인드가 QA 테스트와 출시 후 적응을 예시로 든 것은 게임 업계용 세일즈 포인트처럼 보이지만, 같은 논리가 화면 기반 업무 자동화 전반에 그대로 적용된다. 게임에서 다듬은 조작 능력이 사무 환경으로 옮겨가는 경로는 알파고에서 알파폴드로 이어진 경로보다 훨씬 짧다.

한국 게임사에 주는 함의

국내 게임사 관점에서 이 발표는 두 갈래로 읽힌다. 하나는 기회다. 딥마인드가 밝힌 파트너 목록은 Coffee Stain(발하임, 새티스팩토리, 고트 시뮬레이터 3)과 Hello Games(노 맨즈 스카이)와 Keen Software House(스페이스 엔지니어스)와 Strange Loop Games(에코)와 Thunderful Games를 포함해 상당수가 중소 규모 스튜디오다. 프런티어 연구소가 원하는 것은 대규모 자본이 아니라 독특한 세계와 플레이어 이해라는 신호이며, 지속형 세계나 샌드박스를 운영하는 국내 스튜디오라면 협업 제안의 근거가 된다.

다른 하나는 경고다. 범용 게임 에이전트가 코드 수정 없이 붙는다는 말은, 게임사가 허락하지 않아도 붙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화면과 입력만으로 동작하는 에이전트는 기술적으로 자동 사냥 도구와 구분되지 않으며, 경제가 플레이어 활동으로 굴러가는 게임에서 이 구분은 서비스의 근간에 닿는다. 딥마인드가 오프라인 인스턴스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올라가는 로드맵을 굳이 명시한 것도 이 긴장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국내 라이브 서비스 팀이라면 AI 에이전트를 어떻게 허용하고 어디서 막을지에 대한 정책을 먼저 정리해 두는 편이 낫다.

조심해서 읽어야 할 부분

구글 딥마인드의 2026년 8월 21일 글은 연구 발표가 아니라 파트너십 발표다. 성능 수치도, 벤치마크 결과도, 논문도 없다. 확인 가능한 실제 산출물은 Aura Guidance 하나이며, 나머지는 앞으로 하겠다는 계획이다. SIMA 2가 노 맨즈 스카이와 발하임에서 사람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인다는 서술도 딥마인드 자체 평가이고, 이 글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량 지표가 실려 있지 않다.

일정도 열려 있다. 오프라인 인스턴스에서 EVE Frontier를 거쳐 본편으로 간다는 3단계는 조건부이고, 각 단계의 기간이나 성숙도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딥마인드가 잡은 네 가지 능력이 15년 전 아타리처럼 실제 돌파구로 이어질지, 아니면 지속형 세계라는 난이도 앞에서 데모 수준에 머물지는 지금 판단할 근거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게임을 정복 대상이 아니라 지능이 자라는 환경으로 다시 정의한 이상, 다음 성과는 승률이 아닌 다른 지표로 발표될 것이다.

출처: Alexandre Moufarek, Adrian Bolton, 'From Atari to EVE Online: Building on 15 Years of AI Research in Games'(Google DeepMind 블로그, 2026년 8월 21일) 기반 ASAP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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